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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회지] 만나고싶었습니다.
추천 : 719 이름 : 대전여민회 작성일 : 2012-08-09 11:23:49 조회수 : 2,708

[142호회지] 만나고 싶었습니다.

통일을 향하는 길에서
우직함으로 또는 재기발랄함으로

언제_ 6월 27일(수) 오전 10시
어디_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사무실
누가_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임재근 사무처장, 본회 안인숙 사무국장

하늘에 하얀 구름 둥실 떠있는 6월의 아침. 용두동 서대전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사무실에서 임재근 사무처장을 만날 수 있었다.


안인숙(이하 안) : 반갑습니다.

임재근(이하 임) : 어서오세요! 이리로 오세요.

안 : (회의실에서 시원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나요?

임 : 2004년 여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통일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6.15활동은 걷기대회나 다른 활동을 해왔었어요. 이 단체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한 것은 4년정도 됐어요. 그 전에는 해소된 단체인데 남북공동선언 대전실천연대에서 활동했었어요. 6.15대전본부는 2005년 3월 24일에 만들어졌는데 회원은 시민이 아니라 60여개의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예요. 운영은 회원단체의 회비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안 : 통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임 : 고등학교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향토역사탐방이라는 동아리를 고등학교 3년동안 하면서 지역의 유적지 답사를 했어요. 그 동아리가 서천지역의 동아리로 커졌는데 역사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역사인식도 갖게 되고 지금도 멘토로 지속적으로 연락도 하고 결혼식 주례도 해주셨답니다. 그리고 또 한 축으로는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 활동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 쯤 통일운동이나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환경운동을 하려고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던 중 때마침 남북공동선언 대전실천연대에서 활동을 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두 가지를 병행하게 되죠.

안 : 이렇게 두 가지를 잘 하나봐요?

임 : 뭐 요즘 유행하는 두 개의 문처럼 두 개의 길은 아닌데…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그러다가 한 마리를 놓치게 되죠. 나중에 대학원을 포기하게 되었죠.

안 : 놓치는 게 아니라 선택한 거 아닌가요?

임 : 그렇다기 보다는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빠져있는거죠. 2004년 9월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9년이 되었네요.

안 : 통일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잘 모를것 같아요. 그 얘기를 좀 해주세요.

임 : 6.15공동선언을 실천한다는 것은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하는 평화통일운동을 해나가는 것 입니다. 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는데요. 정책을 만들 수도 있고, 학문적으로 연구를 할 수도 있으며, 문화적인 방법, 기업교류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이 모두 통일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단체는 어떠한 특별한 사업을 하기 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민간차원의 행사를 준비하면서 행사 때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활동할 것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도에 남과 북, 해외까지 만들어져서 그 당 시에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 행사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남측, 북측, 해외 측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대전지역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 행사뿐만이 아니라 일상적 통일 운동을 하기 위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충남본부로 개편이 되었습니다.

안 : 지금까지 활동해온 것을 생각해보니까 어떠세요?

임 : 이렇게 오래 활동했나 생각해보니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통일마라톤 대회 같은 큰 행사를 마치고 나면 뿌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단북관계가 역행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안 : 정부관계가 안 좋으면 민간 쪽도 위축되는데….

임 :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한다는 것이 우리 단체의 생각입니다. 한동안 금강산관광 활동을 해오면서 시민들이 만족해하고 북을 가깝게 느낄 수 있어 좋은 사업이었는데 현 정부 들어와서 끊어진 게 정말 안타깝죠.

안 : 통일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은 민감성이 떨어지기 쉬운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 같고 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임 : 우리는 장기간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 측면으로는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만든 영상을 보니 한반도에 대해서 관심이 정말 많습니다. 최근의 변화나 남북간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외국인들 의 눈이나 외신 보다 무감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오랜시간에서 오는 무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각이 오래되면 역치상의 감각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픈것을 모르잖아요. 우리도 그러한 상황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면에서 우리와 같은 통일단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감각해진 시민들의 통일감각, 감수성을 높이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단체의 역할입니다.

안 : 예전에 독일 통일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봤을 때 통일 이전의 삶이 더 나았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통일을 생각하면 남과 북의 경제적, 사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이 됩니다. 어떠한 통일을 우리가 그려볼 수 있을
까요?

임 : 우리가 쉽게 생각하게 되는 통일은 독일식의 통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분단의 시간만큼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통일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교류를 내나가고 단계를 밟아 나가다가 어느새 서로 통일이 되었나까지 생각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예를 들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남과 북이 연애를 한다고 상상하면 우리가 언제부터 연애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차츰 왕래가 이루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단계를 밟아 나아가다가 나중에는 제도화라고 해야하나요. 결국에는 통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게 모르게 점진적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통일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독일식의 통일을 생각하면 통일을 반대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 대전지역에서 촛불집회 사회를 많이 보고 있는데, 참 재미있고 다양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아이디어들은 어떻게 나오는지요?

임 : 촛불기획같은 것은 주변분들에게 많이 조언을 요청하는 편입니다.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하는데 많지는 않은 편이구요. 촛불집회 사회를 보려면 하루정도는 시간이 들게되요. 자료를 찾기도 하고 동영상도 많이 보고 하는데 나중으로 갈수록 밑천이 떨어져서 정말 힘들더라구요.

안 : 그럼 전과기록도 있나요?

임 : 네…. 이전에는 앞으로 나서지 않아서 전과 기록이 없었는데요. 한미FTA 반대 집회를 하면서 처음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벌금을 맞게 되었습니다. 모금으로 그 때 당시 나온 벌금과 민사소송 등으로 나온 손해배상도 갚았습니다. 그 뒤로는 자주 기소가 되더라고요. 이전에는 구속과 같은 방식으로 탄압을 했는데 이제는 돈으로 하더라고요. 사람이 구속이 되면 사람들이 오히려 결집을 하는데 벌금이라던지 손해 배상이 나오면 분열이 되는 상황이라 최신 탄압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안 : 부모님은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 : 부모님들은 제가 하는 활동에 대해서 걱정은 하셨는데 제가 부모님께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 하고 있고 해야할 도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해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크게 반대를 하지 않으셨어요.

안 : 그래도 부모님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시나요?

임 : 그렇긴 하지만 오랫동안 제가 활동을 하고 있으니 포기는 아니지만 인정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의 방향은 인정을 하시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저 스스로도 고민이 되기도하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차는 있지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은 직업이 안정적이냐, 돈을 많이 버느냐 보다 자기가 만족하고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면되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최저생계를 유지하면서, 자기계발, 문화생활 등을 해나가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 : 결혼하신지 얼마안되었는데 결혼생활은 어때요?

임 : 결혼한 지 아직 1년이 안되었는데요. 전반적으로는 좋아요. 그리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인생을 상의할 사람이 있다는 것, 배우자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해요. 30년동안 다르게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저는 남과 북도 차이점을 극복하면서 통일을 해나 가는 거잖아요. 60년동안 다른 체제를 가졌던 남과 북을 통일하자고 하는데 두 사람이 못한다면 통일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통일운동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었어요. 혹시 부부생활에 어려움이 있으시면 통일운동을 하시는 것이….

안 : 가사노동은 같이 많이 하시나요?

임 : 같이하다뇨? 제일인걸요. 저는 결혼하기 전에 가사분담을 어떻게 해야하나 먼저 결혼한 선배들한테 물어봤었어요. 저는 처음에는 남녀가 평등하기 때문에 5:5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나눌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상황에 따라서 나누어서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상황에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 드라마 넝굴째 굴러온 당신의 유준상이 남자들의 적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좀 잘 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적(?)이 되더라구요. 저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아요.

안 : 통일이 된다면 무엇을 제일먼저 하고 싶은가요?

임 : 저는 통일이 되면 제일먼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저는 제 업을 그만두기 위해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거죠.

그래서 사실 통일이 되면 여러 군데를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통일이라는 것이 어느 시점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꿈은 어려운 것 같아요. 통일이 된 뒤에 통일운동을 해왔던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요.

안 : 힘든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푸시나요?

임 : 저는 대부분 잠으로 푸는 편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잠을 많이 잡니다.

안 : 그러시군요. 술을 먹거나 그러지 않은 건강한 방법이네요. 앞으로도 멋진 활동 기대하면서 인터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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