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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 민정이 팀장을 만나다.
추천 : 685 이름 : 대전여민회 작성일 : 2011-05-03 12:56:17 조회수 : 5,407

나도 자라고, 꿈도 자라고, 모락 모락 피어나는 풀뿌리들의 자람터. 대전여민회!
-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 민정이 팀장을 만나다.(위 사진 오른쪽)


인터뷰 및 정리 : 김영남(풀뿌리운동센터 '바람' 풀뿌리 인터뷰 기자단 단원)


대전 도심 한가운데 중촌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1987년 창립한 대전여민회라는 여성단체가 마을에 살고 있는 여성들과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어느새 주민들은 마을의 변화를 주도하는 여성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오늘은 대전여민회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과 중촌마을역사탐험대 팀장으로 활동하면서, 풀뿌리운동의 리더로 주목받고 있는 민정이씨를 만나본다.



★ 소개를 좀 해주세요.
  중촌마을까페 팀장 민정이입니다. 올해로 벌서 3년차네요. 마을까페가 지난 2009년 12월에 문을 열었어요. 준비기간 6개월까지 합치면 기간으로는 1년 10개월 정도 되네요. 여민회는 2007년 가을에 회원가입했어요. 대전에는 남편과 결혼하고 첫아이 임신했을 때 2000년 2월에 남편직장 때문에 오게 되었어요. 대전에 연고가 없어 처음에 많이 힘들었죠. 아는사람 하나 없으니 남편한테만 의지하면서 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 둘 낳고 살다가 우연히 중촌동에 마을어린이 도서관 ‘짜장’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대전여민회도 오게 되었죠.


★ 대전여민회를 알게 된 계기, 시기, 활동과정은요?
  대전여민회보다는 일단 짜장을 먼저 알았어요. 둘째 아이가 찬이라고 하는데, 2007년도에 찬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에 견학을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갔었죠. 가서 보니까 도서관도 너무 예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집 바로 앞에 있으니까 좋더라구요. 큰 도서관이 아니라서 정감도 가고 따뜻한 느낌이 나서 좋더라구요. 동네에서 그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도서관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찬이가 어느날 어린이집에서 안내문을 받아왔는데 짜장 사서를 모집한다는거예요. 그때 그 말이 참 귀여웠어요. 거기에 ‘고양이 손길을 기다립니다.’라고 써있었거든요. 그래서 ‘아, 이거다!’ 했죠. 대전에 와서 아이들도 낳고 살았지만 마땅하게 내가 속해있는 곳이 집 말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남편하고 아이들만 보고 살았는데 그게 좀 답답했어요. 그렇게 마을어린이 도서관 짜장과 만나게 되었죠.
5월부터 사서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그때 동네 몇몇 엄마들, 여혜정, 여민회분들 민양운, 김미정관장님이 있었죠. 대전에 연고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들도 많지 않았던터라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도 알게 되고, 내가 시간날 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죠. 거의 도서관에 살았어요. 아이들 학교에서 오기전까지는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활동하는 것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또래 관계가 동네에 없었는데 사귈수 있어서 좋았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존재하던 내가 이제는 사서라는 직함도 생기고, 나 민정이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생기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이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강좌도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하잖아요.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았죠. 그리고 제가 여성주의를 접하게 된 것이 대전여민회에서 하는 여성주의 아카데미였어요. 제가 기회가 좋았죠. 그때 여성주의 교육을 초급, 중급, 심화과정으로 했잖아요. 그때 그 교육이 저에게는 여성주의를 접하고 배우게 된 계기였어요. 짜장활동만이 아니라 여민회 활동까지 한 계기가 되었죠.


★ 보통 여성단체에 대한 선입견들이 많은데 여민회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대학교 다닐 때 친구가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었어요. 그때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친구가 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여성단체에 대한 선입견같은 것은 없었어요. 대전여민회도 그때 그 친구가 하던일을 하는 단체구나라고 생각했죠. 사실 짜장에 오기전부터 여민회를 알고 있었어요. 짜장 만들기 전에도 여민회가 어린이들 프로그램 여러 가지 했었잖아요. 포스터로도 보고…진작에 오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왔죠. 그때는. 제가 좀 낯설음이 있거든요.


★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 팀장이잖아요.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어요?
도서관 활동을 2년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민양운처장님이 마을품앗이강좌와 관련된 프로젝트 사업에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런 제의가 저한테 온게 내가 여기에서 인정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겁도 없이 한다고 했죠. 처음에는 도서관 활동 하는 것처럼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동안은 활동비를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원활동이었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활동비를 받고, 프로젝트 책임자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갑자기 너무 힘든거예요. 사람들도 이제 저를 활동가로 기대하고, 기획이나 계획을 스스로 세워서 이끌어 가야 하는게 정말 어렵더라구요. 짜장에서 그냥 활동하는 것하고는 달랐어요. 여민회 사무실에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것도 짜장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니까 관계 맺기도 힘들었구요. 그때 생각했죠. 짜장에서도 활동을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활동가가 있었구나. 그때서야 그동안 짜장에서 고생했던 활동가들이 눈에 보이더라구요.
2009년 까페를 만들기 전에 품앗이 강좌를 시작했는데요. 그게 생각보다 잘 안됐어요.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소모임으로 조직해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은 강좌가 끝나면 흩어져버리고, 뭔가 없을까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민양운처장님이 여민회 건물 1층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를 까페로 꾸며보자고 하셨죠. 마침 도서관 엄마들과 별도의 공간이 필요했어요. 도서관에서 엄마들 모임이 하나둘 늘어나고 도서관과 상관없는 일들도 도서관에서 하다 보니 복잡했거든요. 그래서 활동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 엄마들이 편안하게 모일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어떻게 꾸밀까 돈은 없고, 뭐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았죠. 그러던 차에 처장님이 여성재단에서 하는 여성휴식공간을 꾸며주는 사업에 계획서를 냈고, 선정된거예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까페를 만들게 되었어요. 저는 처음에 그런 일들이 안될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램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신기했죠. ‘아 꿈꾸면 될 수도 있구나…’


★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 숲’은 어떤 곳이예요?
  마을까페 운영은 시간대별로 지역주민의 자원활동으로 이루어져요. 공정무역커피도 팔고, 여성들의 자활물품도 팔아요. 안전한 먹거리 직거래도 이루어져요. 마을까페는 비록 큰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을에서 존재감이 커요. 여성들끼리 수다모임하고 그러면 마을에 갈 곳이 없잖아요. 특히나 엄마들은 아이들 데리고 맘편히 갈데가 없어요. 차도 마시면서 엄마들끼리 맘껏 수다도 떨고 그런 편안한 공간으로 기능도 하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하니까 참여할 수도 있고, 지역여성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그리고 까페 자원활동을 하는 분들도 모두 좋아하고요. 자기 시간에는 각자 까페 주인이 되는거잖아요. 여성들의 쉼터이기도하고, 마을 주민들의 정보공유의 장이기도 해요.


★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 활동과 중촌마을역사탐험대 ‘그루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잖아요?
중촌동 자유총연맹 옆 공간이 예전 대전형무소 자리거든요. 우리 역사의 아픔이기도 하죠. 망루와 우물이 있는데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요. 그곳을 정비하고 재해석해서 평화의 가치로 만들고, 지역주민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는게 그루터기활동이예요. 이 사업을 하기 전에는 저도 중촌동에 10년을 살면서도 몰랐어요. 그냥 쉽게 지나치던 그곳이 그렇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인지 몰랐어요. 동네엄마들과 함께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공부부터 시작했죠. 지역의 문화관련 활동 하시는 분, 오마이뉴스에 취재기자에게 역사를 배우고, 평화여성회 강사분을 모시고 평화와 관련된 교육도 받고, 다른 역사관련 박물관에 견학도 가고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공부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요. 저도 그랬지만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문화적 자산이 있는지 알지 못해요. 현재 중촌마을의 평화투어 프로그램으로 1,2,3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이야기를 평화라는 가치로 엮어 내고 또 지역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평화를 퍼뜨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하나하나 주춧돌을 놓아가는 과정이지만 더 열심히 해서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싶어요.


☞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
중촌마을까페 ‘자작나무숲’은 중촌마을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2010년 1월부터 문을 열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수다 떨면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 여성주의가 공유되고 퍼지는 공간, 안전한 먹거리, 대안적 문화들이 소통되는 공간으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월~금, 오전 9시 ~ 오후 9시까지 주민들의 자원활동으로 운영되며, 품앗이 강좌, 독서모임 등이 정기적으로 진행되며, 수익금은 마을의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다.(문의 T. 042-242-3534)

☞ 중촌마을역사탐험대 ‘그루터기’
2010년 11월부터 행정안전부와 대전시의 자립형지역공동체 사업을 지원받아 시작되었다.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대전형무소라는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고, 역사를 재해석하여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평화의 가치를 확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대전교도소와 주변을 정비하는 활동, 평화투어 프로그램 개발 및 강사훈련, 대상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문의 T. 042-242-3534)

* 대전형무소 :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는 부족한 수감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 감옥을 신축하게 된다. 대전교도소 역시 이러한 이유로 인해 1919년 5월 1일 대전군 대전면 중촌정(현 중구 중촌동)에서 개소하게 되었다. 1923년 대전형무소로 이름이 바뀐 대전교도소는 주로 비중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는 곳이었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가들의 감옥과 일반 감옥 사이에 이중벽을 쌓아 탈옥할 수 없도록 하였다.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등이 이 곳에서 수형생활을 하였다.


★ 활동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대전여민회를 만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저는 좀 의존적이었거든요. 대전에 연고도 없이 와서 제가 아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남편만 쳐다보게 되고...남편은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자기 생활도 중요한데 저는 남편만 보고 있으니까. 여민회 활동하면서 제가 주체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결정하게 되고, 기획하게 되고,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니까 자신감도 생겼죠.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 석자로 인정받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정말 획기적인 발전을 한 거예요. 힘든 것도 많아요. 제가 팀장이고, 활동가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저에게 기대를 하는데 그 부분이 안될때는 정말 힘들죠.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고, 채워나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자신감 없어질때도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그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달라졌죠.
그리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족간의 관계예요. 활동 초기에 엄마가 회의나 교육간다고 하면 아이들이 싫어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적응했죠. 이제 조금 크기도 했지만 자기할일 알아서 하려고 하고, 남편도 오히려 예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는 가사 일을 전혀 안하다가 지금은 잘 도와줘요. 청소나, 주말에 아이들 봐주는 것, 평일에도 제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봐주고요. 그게 아이들한테도 좋은 교육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니까 남편도 직업인으로 인정을 해주는 것 같아요. 얼마전 4박 5일짜리 교육이 있었는데 저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말을 했더니 남편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어요. 그런 변화를 통해 저 스스로 남편하고의 관계에서 훨씬 주체적이 된 것 같아요.


★ 본인에게 대전여민회란?
‘나의 성장 공간’ 대전여민회를 만나서 풀뿌리운동을 만나고, 여성주의를 만나고, 저 자신이 성장했어요. 이런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서 사회전체가 변할거라고 봐요. 동네엄마들어 더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이런 풀뿌리 활동은 본인과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마을안에서 풀뿌리적 공간이 있다는 것, 지역주민들이 함께 모여 고민을 나누고 함께 어떤 활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아이들 키우는 엄마니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처럼 중촌동이 그런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정말 행복합니다. 이런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딸이 이제 청소년이 되요. 내년에는. 그러다보니 자연히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요. 그리고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잖아요. 학교와 학원 말고는.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공간, 공부도 할 수 있고. 쉼,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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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인터뷰를 하면 나를 정리해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결혼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저처럼 경력단절 여성들을 지원해주는 센터가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주의 교육이나 인문학적인 교육을  해주면 좋겠어요. 여성들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거든요. 제가 예전에 여민회에서 들었던 ‘여성주의 아카데미’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벌써 4년전이지만 그때 들었던 교육들이 저에게는 활동을 하는 자양분이 되었어요.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게 여성주의 교육을 하고, 또 단계별로 해서 더욱 많은 여성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저는 대전여민회 상근활동을 하다가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늘 함께 할 땐 잘 몰랐던 것들을 새삼 조금씩 발견하고 있지요. 한발 떨어져서 본 대전여민회 풀뿌리운동이 필자의 눈에 좀 더 의미 있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지역주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운동주체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중촌마을에서 풀뿌리들이 무럭 무럭 자라 풀뿌리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어쩌면 참 지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마을의 변화가 앞으로도 주목됩니다.
  [139호 회원글] 초보주부 인문학과 만나다.
  [136호 최영민 회원글] 어떻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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