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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지금우리는! | 기획 |
‘야쿠르트 아줌마’ 길 위에서 보낸 사계절
 대전여민회  | 2014·02·14 17:16 | HIT : 5,276 | VOTE : 562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맬 때면 어김없이 살구색 유니폼을 입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먼저 찾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하철역, 아파트, 시장, 주택가 골목 등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유니폼이기에, 초면에도 불구하고 길을 묻기 부담스럽지 않다. 마치 오래 알아왔다는 듯 거리낌 없이 길을 묻고는 서둘러 걸음을 돌리곤 했다. 감사의 뜻으로 야쿠르트라도 하나 팔아줄 만도 한데, 젊은 인생은 제 앞가림만으로도 벅찬지 야박하게 등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스치듯 지나쳐온 유니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아이를 낳기 전, 길은 집과 목적지를 이어주는 기능적 의미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집밖을 나서기 시작하면서 길은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일상의 조각들을 관람하는 전시장이 되기도 했다. 길과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니 익숙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도 살구색 유니폼 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유니폼 주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그분들의 삶이 궁금해진 것이다.

“애 보면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야쿠르트 판매원’이라는 직종이 처음 우리 사회에 출연한 것은 1971년도다. 당시 47명이었던 야쿠르트 판매원은 1975년에 1천 명에서 1983년에 5천 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만3천 명 정도가 활동 중이다. (파이낸셜 뉴스 2013년 12월 13일자 보도.) 1980년대 당시 야쿠르트 판매원은 주부들의 꿈의 직장이기도 했다.

50대 여성 한혜옥(가명)씨는 야쿠르트 판매원이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1980년대에 일을 시작해 30년을 한결같이 일해 온 베테랑 판매원이다.

“그 당시 유치원도 별로 없고, 전동카 위에 애기 태우고 다니면서 일했어요. 내 지역, 활동 범위 내에 집이 있으니까, 애 오는 시간에 맞춰서 애들도 챙길 수 있었고, 이만한 직업이 없었죠. 그 당시엔 대기자가 하도 많아서 자격도 고졸 이상이고, 인물 보고 뽑고, 골라서 뽑고 했어요. 애 보면서 하는 직종 중에서 최고의 수입이더라고요. (1980년대 후반에) 26-27만원이면 큰 돈이었어요. 참 좋은 직종이었죠.”

‘참 좋은 직종이었다’라는 씁쓸함이 감도는 한혜옥 씨의 뒷말에 이어, 과일노점에서 신문배달, 사무직,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6년 경력의 판매원 강현숙(가명, 40대)씨가 ‘야쿠르트 아줌마’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늘어놓는다.

“과일노점을 2년 하다가 이걸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노점을 하다 보면 구청도 신경 써야 하고. (과일이나 이거나 길거리에서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이 우릴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예전 여사님(판매원들끼리 부르는 호칭)들이 그만큼 쌓아놓은 것이 있어서, 이미지 자체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 프리랜서와 마찬가지여서 근무를 조절할 수 있고, 잠시 잠시 개인 일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비 오나 눈 오나 그 길목엔 그녀들이 있다

아침 8시 30분에 판매점에서 물건을 받아 오전에 고정 판매(배달 업무)를 끝내면, 해지기 전까지 한 곳에서 유동 판매를 시작한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무릎 관절에 허리 통증은 기본, 겨울이면 얼굴 동상이 단골처럼 찾아온다고.

“저는 여름이 힘들어요. 겨울은 그냥 견디면 되는데, 여름이면 지쳐버리니까.” (한혜옥)

“장마철에 우의를 입고 있다 보니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햇빛 때문에 알러지도 생겨요, 전 몸이 약하니까 멀티 비타민도 먹고 잘 챙겨 먹고, 먹는 것에 신경을 써요. 한 번은 겨울에 얇은 거 9개까지 껴입고 다녀봤어요. 그러면 화장실 가는 게 너무 힘들어. 그걸 다 벗고 입기가.” (강현숙)

“(계절도 계절이지만) 아파도 진짜 쉬지를 못 해요.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내 지구밖에는 알지를 못 하니까 (남의 일을) 대신 해줄 수가 없는 거죠.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상을 당하게 되면, 미리 빠지는 날만큼 다 배달해 놓고 고객들한테 메모 남기고 빼야 돼요. 두 번 그런 일 겪었는데, 부모님 상을 당했는데, (배달은 끝내야 하고)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까…. 동료들이 같이 도와줘서 2백집을 다 돌리고 갔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그곳에 가면 그녀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그 옛날 마을 초입에 우뚝 서있던 장승처럼, 길을 들고나는 사람들과 눈 맞추고 엷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서서히 서로의 인생을 나누는 새로운 인연을 맺어간다.

“(영업이다 보니) 항상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면 판매액이 달라져요. 얼굴 쳐다보고 그냥 지나칠 것도 인사하고, 멀뚱멀뚱 서 있는 것과는 다르죠.” (한혜옥)

“집에서 안 좋은 일도 있는데 일 나오면 무조건 웃어야 하니까, 오히려 많은 도움이 돼요. 표정도 밝아지고.” (강현숙)

“이 일하고 3년 지나면 애용자가 만들어지면서 (고객들과) 유대 관계가 형성돼요. 한 번은 고객의 아이가 자라서 출가해서 애를 낳아서 친정에 왔는데…. 내 고객의 아이가 장성해서 또 아이를 낳아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회사의 다른 쪽에서 불평불만이 있더라도 고객 때문에 버티는 거예요.” (한혜옥)

“진짜… 이 여사님들 없었으면… (고객들과) 너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니까, 제품이 좋아서도 있지만 아줌마들이 좋아서 (제품을) 먹는 경우도 많아요. (여사님들이 쌓은) ‘신뢰’가 이 회사를 지금까지 이끈 것이 아닌가 싶고, 정말 존경스러워요.” (강현숙)

야쿠루트 판매원이 근로자 아닌 개인사업자?

야쿠루트 판매원은 각 지역 관리점에 소속되어 있다. 하나의 관리점에서 주택, 직장, 아파트, 시장 지구 등 17-20개 지구를 관리한다. 한 명의 판매원이 하나의 지구를 맡아 개인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개인사업자지만, 회사의 직접적인 지시도 많고, 따라야 할 것들이 많아요. 저희가 취급하는 제품이 발효유 외에 건강식품까지 40종이 넘어요. 그러니까 영업교육도 많이 시키고, 고객 응대도 많이 시키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교육에 한 달에 2번씩 받고. 하지만 (회사에서) 저희한테 돌아오는 것은 없어요.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없고. 교묘하게 혜택만 없는 거예요.” (한혜옥)

10시간 영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고객 관리를 위한 업무가 남아있다. 영수증 출력, 수금 체크, 재방문, 포인트 적립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 고정 고객이 180가구인데, 각 가구마다 요일, 제품 종류 다 다르고, 수금 관련 서류들도 다 정리해야 해요. 멤버스 가입시키라면 일일이 가서 가입 받고, 사은품도 전달하고. 정말 머리 나쁘면 이 일도 못해요. 그나마 요즘은 스마트 폰이 생겨서 편해졌죠.” (강현숙)

“사실 판매액의 23%가 저희가 받는 수수료인데, 그 날 신청한 제품을 다 못 팔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해야 돼요. 그러니까 월급을 받아도 그게 전부 다 월급은 아닌 거죠.” (한혜옥)

“무엇보다 수금 문제가 너무 힘들어요. 수금이 잘 안되면 대납을 해야 하고, 돈 관리하는 게 스트레스가 많아요. 매달 수금이 안 되고 20만-30만원씩 깔리는 거예요. 나중에 수금이 되더라도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는 거죠.” (강현숙)

직원에게 주는 혜택의 일부라도 내주면 좋겠어요

재고 처리 비용이 오롯이 판매원들에게 전가되고, 추가 업무에 대한 보상은 없다. 이런 현실이 아무리 억울해도 당장 들어가야 할 생활비, 아이들 학원비에 엄마들은 그저 버티고 또 버틸 수밖에 없었다.

“여사님들이 경제적으로 참 힘든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참고 하는 거죠. 자기네는(직원들) 토요일 날 쉬면서, 우리는 못 쉬고.” (한혜옥)

“여사님들이 최전방에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직원들한테 주는 거 몇 퍼센트만 내줘도 좋겠어요. 저희한테 돌아오는 게 너무 없으니까, (오히려) 고객들한테 챙겨줄 수 있으면 최대한 챙겨주게 돼요.” (강현숙)

“10년 전만 해도 상조회는 본사 직영점 판매원(직원)들만 해당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치회’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1년에 한 번 상조회장과 각 관리점 자치회장들이 만나서 (개선점에 대해) 이야기해요. 하지만 힘이 약하다 보니까 거의 어필을 못하죠. 그나마 지금은 산재도 된다고 하고, 2013년부터 ‘활동수수료 지원’이라고 해서 한 달에 5만원씩 퇴직금 식으로 연금보험을 들어주고 있어요.” (한혜옥)

일과 동료에 대한 자부심과 달리,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낮았다. ‘개인사업자’라는 덫에 걸려 실질적으로 회사에 대한 의무는 크면서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적기 때문이다.

“저는요, 아침에 판매원 여사님들이 물건 받아서 관리점에서 나서는 모습들을 보면 ‘벌들이 벌집에서 꽃밭으로 꿀 따러 가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사님들 정말 존경해야 해요. 식비 하나 챙겨주지 않고, 잡무에 대한 보상 하나 없어요. 그래도 고객들을 보고 그 관계 때문에 일을 하는 거죠. 사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요. 돌아서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남는 게 뭐가 있어요? 보상이 너무 적어요.” (강현숙)

“사실, 옛날에 재능 학습지 교사들이 노조 만드는 것 보고 저희도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다들 사는 게 너무 어렵다 보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저 내가 벌어야 되니까, 버티는 거고. 그래도 버티는 거예요.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한혜옥)

야쿠르트 판매원은 과거 일하는 어머니들의 대표적인 직업이었다. 탄력적인 시간 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기혼 여성들이 이 직업을 선호하였다. 엄마의 살결이 연상되는 살구색 유니폼이 주는 친근함과 편안함으로 사회적 이미지도 매우 높았고, 판매원 당사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막상 노동 현장에서 만난 그들의 삶은 만만치가 않다. 사계절을 길에서 온몸으로 버텨야 하고, 아파도 휴가 한 번 빼기 쉽지 않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재고 처리는 오롯이 판매원 몫이고, 고객 관리를 위한 잡무 역시 아무 보상 없이 그들이 담당해야 한다. 매스컴에선 기혼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으로 야쿠르트 판매원을 이야기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선 젊은 엄마들의 발길이 뜸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주부 판매원의 헌신을 통해 ‘친절하고 믿을 수 있는 어머니’라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연 매출 1조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기업 성장의 진정한 파트너로서 주부 판매원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사입력: 2014/02/10 [01:32]  최종편집: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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